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고 거래는 ‘누군가의 필요 없는 물건’을 ‘누군가가 저렴하게 얻는 방식’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제는 브랜드가 먼저 나서서 고객의 중고 물품을 수거하고, 다시 판매까지 책임지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왜 지금일까요?
지속되는 경기 침체 속에서도 리커머스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 중입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5조 원이던 국내 리커머스 시장 규모는 올해 43조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단순히 불황형 소비만으로는 설명이 어렵습니다.
지금의 리커머스는 ‘가치소비’와 ‘지속가능성’을 중심에 둔 소비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대량 생산과 폐기를 반복하는 소비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 그리고 실용적인 소비에 대한 관심이 만나 리커머스가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잡은 것이죠.
지금의 리커머스는 실제로 입고 사용할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되사는 순환 소비입니다. 이러한소비 트렌드의 변화로, 브랜드 역시 리커머스의 주체가 되어 고객과의 새로운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중고 거래는 오랫동안 ‘개인과 개인 간의 자유로운 교환’이라는 프레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플랫폼이 바로 중고나라나 당근마켓처럼 개인 셀러들이 직접 가격을 정하고, 직접 만나 거래하는 구조였죠. 하지만 최근 리커머스의 흐름은 이 전제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브랜드가 직접 나서 중고 거래의 판을 짜고, 가격을 제시하고, 거래의 품질을 보증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습니다. 중고 거래의 주체가 개인에서 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흐름의 중심에는 유통 대기업과 패션 브랜드가 있습니다. 롯데백화점은 ‘그린 리워드’서비스를 통해 고객의 중고 의류를 수거하고, 그에 상응하는 엘포인트를 제공합니다. 수거된 의류는 중고 패션 플랫폼인 ‘마들렌메모리’를 통해 재판매되며, 소비자는 새로운 소비 없이도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현대백화점은 아예 바이백을 서비스화했습니다. 고객이 웹사이트나 앱을 통해 중고 의류를 신청하면, 이를 수거한 뒤 포인트로 환급해주는 방식이죠. 향후에는 오프라인 백화점 내에 전용 중고 매입센터까지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패션 브랜드들도 자체 리세일 채널을 준비 중입니다. LF는 자사몰 중심의 리세일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으며, 무신사는 아예 별도 리커머스 서비스인 ‘무신사 유즈드’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고객과 브랜드가 직접 연결되는 리커머스 환경을 구축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리커머스는 더 이상 누군가의 물건을 사는 일이 아닙니다. 브랜드가 설계한 가이드라인 아래, 고객은 ‘내가 쓴 제품’을 합당한 기준으로 되팔고, 또 다른 고객은 ‘검증된 상태’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신뢰하고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즉, 리커머스는 이제 C2C가 아닌 B2B2C로 전환하면서 기업이 개입하여 양쪽 고객 경험을 설계하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는 리커머스는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을 줄 수 있는 기회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엄격한 신뢰의 기준을 요구받습니다. 특히, 고객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점은 보상의 기준은 어떻게 정해졌는가입니다. 내가 보낸 셔츠에 단추가 하나 없는지, 얼룩이 있는지, 착용 흔적이 많은지 등 이런 요소들이 실제 보상 금액에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판단했는가’를 고객이 확인할 수 없을 때 발생합니다.
단순히 상태 불량으로 감가되었다는 안내만으로는 납득이 어렵습니다. 결국, 제품 상태를 판단하는 근거가 고객과 브랜드 사이의 신뢰를 결정짓는 요소가 되는 것이죠. 기업 입장에서도 일관된 보상 정책을 운영하려면, 내부 기준을 투명하게 운영하고 그 기준이 고객에게도 이해될 수 있어야 합니다.
가격 책정 기준이 자의적으로 보이는 순간, 고객은 리커머스를 브랜드의 진정성 있는 순환 소비로 보지 않고 이익을 위한 또 다른 판매 채널로 인식하게 됩니다. 결국 기업이 리커머스를 설계할 때는 단순히 수거하고 재판매하는 구조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보상의 근거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 확보 방식이 함께 설계되어야 합니다.
기업이 리커머스를 직접 운영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단순한 판매 후 서비스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제품 수거부터 검수, 보상까지의 모든 과정이 브랜드의 신뢰를 걸고 작동하는 일종의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리커머스 서비스를 설계할 때 반드시 고민해야 할 포인트 세 가지를 짚어봤습니다.
👀 고객의 신뢰를 높이는 가시성 있는 절차
리커머스에서 가장 민감한 접점은 검수입니다. 고객이 제품을 보냈을 때, 그 제품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보이지 않다면 불신은 순식간에 쌓입니다. 입고 → 검수 → 보상까지, 각 단계를 고객이 인지할 수 있게 설계해야 합니다. 단순 상태 결과만 텍스트로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고 어떤 상태였는지 ‘과정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 제품 상태 기록의 자동화
중고 제품은 모두 상태가 다릅니다. 같은 모델이라도 사용감이나 손상 정도에 따라 보상의 기준은 달라질 수 밖에 없죠. 이때 중요한 것은,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객관적 근거입니다. 검수자가 텍스트로 정리한 상태 기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입고 당시 상태를 있는 그대로 영상으로 남겨두는 방식은 분쟁을 줄이고, 보상 기준의 설득력을 높이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대량으로 들어오는 제품을 처리하는 환경이라면, 영상 기반의 자동 기록 시스템은 운영 효율성 측면에서도 높은 가치를 가집니다.
📦 내부 오퍼레이션과 고객 소통 간의 간극 해소
검수는 물류팀에서, 고객 문의 CS팀에서, 정책은 운영팀에서 관리한다면 고객 한 명의 문의에 답하기 위해 여러 부서를 오가야 하는 비효율이 생깁니다. 이럴 때 영상 기록 기반의 CS 대응 체계는 큰 도움이 됩니다. 검수 결과가 영상으로 명확히 남아 있다면, CS 담당자는 다른 담당자에게 별도 확인을 거치지 않고도 고객에게 바로 응대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리커머스의 신뢰를 유지하면서도 내부 리소스를 줄이는 구조적인 해법이 됩니다.
기업이 리커머스를 직접 운영하는 순간, 고객은 그 브랜드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얼마나 책임 있게 운영하는지를 보기 시작합니다. 이제 중고 거래는 단순한 회수와 재판매가 아닙니다. 고객의 신뢰를 다시 얻는 과정이고, 브랜드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를 보여주는 기회입니다.
투명성은 선택이 아니라 브랜드가 감당해야 할 기본값이 되었습니다. 입고된 제품의 상태가 어떤 기준으로 평가되었는지, 보상은 어떤 절차를 거쳐 책정되었는지를 고객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신뢰로 이어지려면, 결국 브랜드는 스스로 보이는 기준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리커머스를 운영하는 기업에게 필요한 것은 유통망보다, 이 신뢰를 설계할 수 있는 준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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